‘아파트 통장 발급 소장직인 필수’ 은행은 모른다?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4.18 조회수 265

입대의 회장 사업자등록증・인감만 제출하면 재발급 가능
지자체에선 “회장 단독 직인 통장은 공동주택 법규위반”
소장만 몸달아…“은행창구도 법령 적용되게 보완 필요”

아파트 관리비 통장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단독 직인으로 재발급 받는 게 여전히 식은 죽 먹기다. 공동주택관리법령에는 관리사무소장 직인은 필수고 회장 직인을 추가할 수 있게 돼 있으나 은행 창구에서는 ‘통장 주인이 원하면 바꿔준다’는 식이다. 잘못된 회장이 아파트 돈을 빼내는 금융사고라도 터져야 고쳐질까,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입대의 회장 혼자 통장 재발급

소장과 회장의 직인이 등록된 일반적인 아파트 관리비 통장.
소장과 회장의 직인이 등록된 일반적인 아파트 관리비 통장.

경기도 안성 A아파트의 신임 입대의 B회장은 지난달 말 자신의 명의로 변경된 사업자등록증을 갖고 거래 중인 C금융기관을 방문해 통장을 재발급했다. 입대의 회장이 바뀌면 통상 회장과 소장이 함께 금융기관에 가 직인을 하나씩 찍는다. 하지만 B회장은 은행에 가면서 D소장에게는 알리지도 않았다. 이 아파트는 전현 입대의 간 분쟁이 심한 단지로 소문나있다.

본지가 신임 B회장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고 대신 E 입대의 관리이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전 입대의의 불법 인출을 막기 위해 회장 직인만 변경했다”면서 “소장 직인은 바뀌지 않았고 두 개가 찍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D소장은 “소장 직인은 관리사무소에 그대로 있으니 B회장의 단독 직인 통장일 것”이라며 “새 통장 실물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본지가 C은행 지점에 통장의 직인이 몇 개인지를 확인하려 했으나 지점 측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은행의 아리송한 대응

D소장은 “C은행 지점의 문의로 통장 재발급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통장에 소장의 직인이 없으면 공동주택관리법령 위반’이라고 설명했으나 C은행 측은 ‘중앙 법규팀에 알아봤는데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발급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은행 측이 곧바로 ‘새 통장을 가져가라’고 했지만 D소장은 위법하게 발급된 통장이어서 찾아오지 않았다. D소장은 “은행 측도 뭔가 불안했는지 새 통장을 입대의에 넘기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D소장이 안성시에 이를 알리자 시는 12일 이 소장에게 새 통장의 사본을 제출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D소장은 “C은행에 통장을 달라고 했으나 은행 측은 ‘통장 명의자(B회장)의 동의 없이 내줄 수 없다’고 해 빈손으로 돌아왔다”며 “시청에 상황을 얘기하니 ‘관리주체가 해결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안성시 공동주택 감사팀의 F주무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단지의 내부 분규가 오래됐고 매우 심한 상황”이라며 “회장 단독 인감의 통장으로 확인되면 법규 위반으로 시정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D소장의 민원에 따라 C은행 지점에 대해 확인에 들어갔다.

◇소장 직인 없는 통장의 문제점

공동주택 관리비 통장을 엄격히 관리하기 위한 규정은 공동주택관리법 제23조와 동 시행령 제23조, 시행규칙 제6조의 2 등에 들어 있다. 관리비 통장계좌에 관해서는 시행령 제23조 제7항에 ‘소장의 직인 외에 입대의 회장 인감을 복수로 등록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소장 직인은 법 제64조 제5항에 따라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된 직인’이어야 한다. 아파트 관리현장에서는 ‘회장 인감 단독으로 통장을 만들면 법규 위반’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새로 뽑힌 입대의 회장이 자신의 명의로 바뀐 사업자등록증과 대표자 인감만 은행 창구에 제출하면 소장 직인 없이도 통장을 재발급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새 회장이 마음먹기에 따라 단독으로 아파트 입주민의 재산인 관리비 수입을 임의로 빼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시중은행들도 똑같다는 점. 본지가 경기와 인천의 아파트 소장들을 통해 시중은행 4곳에 “아파트 입대의 명의의 통장에 소장과 회장의 직인이 들어 있는데, 새로 바뀐 회장이 회장 직인과 새 사업자등록증을 갖고 창구에 가면 새 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느냐”고 질문해보니 모두 “재발급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법 정비 미흡해 통장은 ‘시한폭탄’ 돼

공동주택관리 정책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관리비 통장의 중요성을 인식해 공동주택 관리주체에 엄격하게 관리할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은행 창구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관련 법령이 2016년 8월 시행됐지만 그 이후 6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은행 창구가 이 법령을 준수하도록 법을 정비하지 않았다. 본지는 딴맘을 먹은 입대의 회장이 위험한 일을 벌일 수 있음을 여러 차례 경고해왔다. <2023. 2. 8., 2021.10. 27. 사설 참조>

법 정비가 안 돼 금융기관이 공동주택관리법령을 무시하는 바람에 보통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이 쌓이기도 하는 아파트 공식 통장이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이 틈바구니에서 아파트 소장들은 책임을 뒤집어쓰지는 않을지 몸이 단다.

◇통장 욕심낸 회장의 소장 살해

인천의 모 소장은 “2020년 인천 G아파트 전 입대의 회장의 소장 살해 사건도 회장이 몰래 통장을 재발급한 것이 발단”이라고 말했다. 당시 G아파트 통장은 소장과 회장의 직인 두 개가 찍혀 있었는데 회장이 소장 몰래 은행에 가 분실을 이유로 재발급받으면서 회장 단독 인감을 썼다. 소장이 다시 직인 두 개로 바꿔놓으면 회장이 단독 인감으로 바꿔놓기를 수차례 했다.

소장은 “입주민 재산을 지키느라 너무 힘들다”고 주변에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장을 지켜낸 소장은 이에 앙심을 품은 회장의 흉기에 쓰러졌다. G아파트가 거래해온 은행 지점 관계자는 지금도 “실제 명의자가 통장 재발급을 요청하면 해 주는 게 은행의 업무이며 아파트 관리비 통장에 관한 별도 지침은 없다”고 말했다. 비극을 겪고도 고쳐진 게 없다.

◇통장 관리 주체인 소장 책임 될 수도

김미란 변호사(법무법인 산하)는 “현행법 아래서 회장 단독 인감 통장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면서 “통장 관리의 주체는 소장이므로 소장이 입대의 회장, 지자체 및 은행 등 관련 당사자에게 시정 요구 등 공식적으로 대응해야 만일의 경우 대항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 관리전문가는 “소장이 관리비 통장 관련 법령을 아무리 지켜도 은행이 따로 놀면 금융사고가 터지기 십상”이라며 ““공동주택관리법령이 은행 창구에서도 적용되도록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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