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경보 시 소방설비 먼저 끄고…” 지시한 소장 벌금형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4.24 조회수 202

법원 “실제 화재 때 대피조치 제때 못할 수도”

 화재 경보 오작동이 자주 발생하는 노후아파트의 관리사무소장이 관리직원에게 ‘화재 경보가 울리면 우선 소방 설비를 끄고 대처하라’고 지시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소장이 속한 부산도시공사도 함께 벌금형을 받았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판사 오흥록)은 화재예방, 소방시설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부산 사하구의 모 임대아파트 소장 A씨와 이 아파트의 소유·관리인 부산도시공사에 각각 벌금 500만 원, 400만 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2월 4일 이 아파트의 한 세대에서 불이 났다. 통합초소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자 경비원은 A소장이 제작한 대응 매뉴얼에 따라 화재설비를 끄고 현장을 방문해 119와 함께 화재를 진압했다. 그러나 A소장과 그가 속한 부산도시공사는 아파트 소방시설의 기능과 성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폐쇄·차단 등의 행위를 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A소장은 아파트의 노후화로 화재경보 오작동이 빈번하게 발생해 입주민들로부터 민원을 받아왔다. 이에 그는 화재 경보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매뉴얼은 화재 경보가 울리면 R형 수신기의 지구경종, 사이렌 비상방송의 작동을 순서대로 정지시킨 뒤 현장 확인 후 실제 화재가 발생한 경우 작동 정지를 모두 해제하고 119에 신고하라는 내용이었다.

A소장은 아파트 통합초소 근무자에게 해당 매뉴얼을 따르라고 지시했다. 또 배관 노후화로 인한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소방안전관리자가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P형 스프링클러 예비 펌프의 연동을 정지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오 판사는 A소장과 부산도시공사의 혐의를 인정했다. 오 판사는 “매뉴얼은 장기간 시행돼온 것으로 보이는데, 대부분 화재경보가 오작동이라고는 하나 많은 세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화재 발생 시 대피조치 등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근무자가 수동으로 119신고 및 차단해제 등의 조치를 하게 돼 있는데, 그에 시간이 소요되고 근무자의 실수로 이러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위험이 있다는 것.

오 판사는 다만 “법 위반이라는 결과만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애를 쓴 관리사무소 측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노후한 아파트에서 이런 행위를 하게 된 동기나 연유, 관리사무소 측의 대처방안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A소장에게 위법성의 인식이 확고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오 판사는 “A소장이 소방 관련 법령을 더욱 준수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소장으로 부임한 이래 입주민의 생활 편의 증진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며 많은 입주민과 관리직원이 A소장의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