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사각지대’···당신의 아파트 ‘편의시설’은 안전할까요?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5.08 조회수 166
전지현 기자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일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일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연합뉴스

아파트 단지에 어떤 생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가는 최근 입주자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항목 중 하나다. 예전에는 경로당과 놀이터 정도였던 입주민 공용 편의시설은 아파트 고급화 바람에 힘입어 그 종류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신축 아파트의 ‘커뮤니티 센터’에서는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골프연습장, 목욕탕·사우나, 독서실 등 전문화된 시설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지 내에서 ‘원스톱’으로 각종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우후죽순 들어선 시설들에 불안한 시선도 있다. 단지 내 시설의 안전기준 등에 대한 법령이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자칫 안전사고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민 편의시설이라는 이유로···‘같은 용도, 다른 법리’

천안 한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의 사우나 내부 모습. 창문이 없고 출입구 이외의 대피로가 없는 벙커 형태다. 독자 제공

천안 한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의 사우나 내부 모습. 창문이 없고 출입구 이외의 대피로가 없는 벙커 형태다. 독자 제공

3년 전 준공된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아파트 사우나가 영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당 사우나는 지하에 위치했다. 창문이 없으며 출입구 이외에 지상으로 연결되는 화재 대피 시설(피난로)이 없는 벙커 형태였다. A씨는 “1년 반 전 소방 담당자에게 문의했을 때는 남탕과 여탕 각각 지상으로 연결되는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며 “코로나19도 문제였지만 화재 설비를 추가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사우나를 운영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행정 및 소방당국은 법적으로 해당 사우나에 피난시설 설치를 요구할 권한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복리시설(편의시설)’로 분류되는 아파트 내 목욕탕·사우나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영리 목적이 아닌 입주자들의 편의를 위해 운영되는 커뮤니티 시설의 사우나는 주민들의 관리비로 운영된다. 주무부처의 영업 허가가 필요한 목욕장업과 달리 주민들 동의로 운영 여부가 결정된다. 통상적인 ‘목욕장업’ 사업장들과는 다른 법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에서 소방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특정소방대상물’에 커뮤니티 시설 내 목욕장이 속하는지도 불분명하다. 5층 이상의 아파트 동을 포함한 공동주택에는 소방시설을 설치하게 돼 있다. 아파트 커뮤니티센터가 아파트 건물 내부에 있으면 이 규정을 적용받지만, 별도의 저층 건물로 있는 경우에는 유권해석이 필요하다.

주택건설기준규정에서 정의하는 ‘주민공동시설’ 또한 경로당, 놀이터, 어린이집, 휴게시설, 독서실, 주민운동시설과 위에 준하는 시설로 규정되는데, 이때 목욕탕과 사우나가 주민공동시설에 속하는지는 명확치 않다. 서아람 법무법인 SC 변호사는 “법문만 봐서는 소방시설 설치 의무가 아파트 사우나, 스파, 목욕탕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걸 믿을 수 없다”며 “혹시라도 ‘불이 나면 어떻게 하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내 수영장에서는 안전요원 배치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부산의 한 아파트 내 수영장에서 지난 2월 익수 사고를 당한 4세 심결군 사망 사건 당시 이 수영장에는 감시탑이나 별도의 안전관리 요원이 없었다. 다중체육시설 중 ‘수영장업’으로 분류됐다면 이 같은 안전조치가 있었어야 했지만, 영리 시설이 아닌 ‘아파트 편의시설’이었기에 법 위반이 아니었다.

주택건설기준규정에서 정의하는 ‘주민공동시설’ 또한 경로당, 놀이터, 어린이집, 휴게시설, 독서실, 주민운동시설과 위에 준하는 시설로 규정되는데, 이때 목욕탕과 사우나가 주민공동시설에 속하는지는 명확치 않다. 서아람 법무법인 SC 변호사는 “법문만 봐서는 소방시설 설치 의무가 아파트 사우나, 스파, 목욕탕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걸 믿을 수 없다”며 “혹시라도 ‘불이 나면 어떻게 하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내 수영장에서는 안전요원 배치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부산의 한 아파트 내 수영장에서 지난 2월 익수 사고를 당한 4세 심결군 사망 사건 당시 이 수영장에는 감시탑이나 별도의 안전관리 요원이 없었다. 다중체육시설 중 ‘수영장업’으로 분류됐다면 이 같은 안전조치가 있었어야 했지만, 영리 시설이 아닌 ‘아파트 편의시설’이었기에 법 위반이 아니었다.

다중이용시설의 용도를 감안하기는 할 것”이라며 “아파트 내에서 자치적으로 결정하는 구조이다 보니 공권력이 발휘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아파트는 지정된 소방안전관리자가 관리를 하게 돼 있다”며 “소방 시설 규정이 완화돼 있다면 관리자에 대한 안전교육을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새로운 걱정거리, 전기차 화재 사고

2021년 1월 대구 달서구 유천동 한 택시회사에 설치된 공용 전기차충전기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진압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1월 대구 달서구 유천동 한 택시회사에 설치된 공용 전기차충전기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진압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파트 단지에는 새로운 안전 위해 요소가 생겨나기도 한다.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지하주차장 등지에 설치되고 있는 전기차 충전기가 대표적이다. 대부분 지하주차장에 위치해 있는 충전기와 주차된 전기차들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소방차 진입이 어렵다는 등의 안전 문제가 발생한다. 공 교수는 “전기차 충전소가 있는 주차장은 배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게 하는 등 예방조치에 대한 입법이 필요하다”면서 “아직은 민간규정만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의 모습이 변화하는 만큼, 공간 곳곳에서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위험요소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갈수록 아파트 공용공간의 활용은 많아질 것”이라며 “새롭게 생겨난 부분에 대한 안전기준을 잘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