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는 SNS ‘인플루언서’ … 국민건강 위협 행태 멈춰야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0.01.15 조회수 731


2016년 8월 24일.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내놓은 ‘갤럭시 노트7’에서 첫 배터리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전세계에서 동일한 폭발이 보고되면서 이 모델은 전량 리콜됐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에 다른 갤럭시 제품 사용자에게도 불안·불신을 남기며 갤럭시 등 삼성 스마트폰 브랜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삼성이 이듬해 ‘갤럭시 노트 8’을 출시하면서 선택한 전략은 기존 셀러브리티 활용이 아닌 SNS 인플루언서를 통한 ‘진정성(Authentity)’ 보여주기였다. 유명 인플루언서는 배터리 폭발을 우려하는 소비자에게 ‘삼성 스마트폰은 안전하다’라고 설득하기에 최적화된 소통 창구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쉽고 빠르게 소통하기에는 이만한 수단이 없었다.


최근 5년 새 유튜브를 중심으로 개인 방송이 활성화되고 콘텐츠 제작에 특성화 된 소위 ‘크리에이터’ 활동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힘을 빌려 마케팅에 나서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지상파·종편·케이블 TV의 보도나 온·오프 라인 매체 기사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벗어던지고 특정 인플루언서의 팔로워(Follower)에게 직접적·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방식은 업종·제품에 따라선 매력적인 채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세계적 추세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은 2017년 20억달러(약 2조1300억원)를 기록했고 올해 최대 약 100억달러(약 10조6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약 1400명의 인플루언서와 계약을 맺고 플랫폼 역할을 하는 CJ E&M의 다이아티비(DIA TV)가 시청률조사기관 티엔에스(TNS)를 통해 2018년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인플루언서가 일반 연예인보다 가깝고 친밀하게 느껴진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95%는 ‘기업보다 인플루언서가 전달하는 정보를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 쉽게 말해 기업 홍보에 있어 값비싼 광고 플랫폼보다 인플루언서를 통한 짤막한 소개가 더 먹혀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유튜버가 더 신뢰를 얻는 것은 친밀감에 있다.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 친구가 해주는 말처럼 다정다감하고 어려운 것을 쉽게 얘기해준다. 쉬운 언어로 친밀감 있게 소통하는 것은 곧 신뢰도로 연결된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IT문화에 익숙한 X세대 이후의 정서, 전문가들의 권위적·교과서적인 표현방식에 대한 ‘반감’ 또는 ‘비호감’이 유튜버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인플루언서는 미디어로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불안·불신·불만의 3불(三不) 사회에서 대중은 정부·정치권 발표보다 사업가 백종원의 말 한마디를 신뢰한다. 어려운 실증적 논문 대신 쉽고 편하게 설명하는 유튜버의 동영상에 만족감을 느낀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전 채널에 걸쳐 활동하며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며 신뢰까지 얻고 있다.


이들에 대한 호감 또는 신뢰가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중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약품·건강기능식품·일반식품 등은 허위·과장 정보로 소비자 건강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소비자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다이어트·탈모·항암 효과 등 기능성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제품이 부지기수다. 장점만 나열하고 건강 상태에 따라 어떤 치명적인 부작용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인플루언서가 의뢰받는 제품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는 과정이 전제돼야 하지만 얼마나 충실히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사실상 겁 없는 인플루언서 행태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대표적으로 유튜버 ‘밴쯔’(29·본명 정만수)가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정 씨는 320만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정상급 인플루언서로 지난 4월 건강기능식품으로 제품 인증을 받고도 과장광고한 게 적발돼 처벌받았다. 2017년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잇포유’를 론칭하면서 다이어트 효과 등을 치료 효과로 오인하게 한 혐의다. 정 씨는 이 사건으로 구독자 60만명을 잃었다. 건강기능식품을 광고하기 위해선 건강기능식품협회의 사전광고 심의를 받아야 한다.


최근 인플루언서의 허위·과장광고 품목·방식 등이 다양화되면서 적발 사례에 비춰보면 건기식으로 인증받은 제품을 판매한 정 씨의 벌금형은 억울할 정도다. 인증받은 건강기능식품을 속여 파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인증 절차가 필요없는 건강식품까지 난립하면서 근거없는 효과와 체험 수기 등이 퍼져나가고 있다. 무분별한 판매로 발생하는 부작용 등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배째라’식 방송이 계속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9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허위·과장광고를 일삼은 인플루언서 15명과 유통전문판매업체 8곳을 적발했다. 팔로워가 10만명이 넘는 인플루언서만 대상으로 조사해 이보다 팔로워 수가 적은 ‘마이크로·나노 인플루언서’까지 포함하면 위법 행위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적발 내용은 다이어트·디톡스·부기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거짓·과장 광고 65건(이하 업체당 경로별 중복건수 합계), 제품 섭취 전·후를 비교한 거짓 체험기 34건, 다이어트 효능·효과 표방 등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혼동 광고 27건, 원재료 효능·효과를 활용한 소비자 기만광고 15건 등이다. 먹으면 살 빠지는 다이어트 보조제, 마시면 신체 내 독소가 빠져나가는 디톡스 쥬스, 발바닥에 붙이면 노폐물이 빠져 검게 변하는 발 패드 등은 모두 허위다.


이들 인플루언서는 SNS를 통해 특정 제품 섭취 전·후 얼굴, 몸매, 체중 변화 등을 체험기 형태로 올리며 거짓으로 효과를 홍보했다. 이에 앞서 본인이 운영하는 쇼핑몰 링크, 공동구매 공지 등을 띄워 소비자 구매를 유도하는 등 소비자를 기만했다.


여기에 온라인 홍보를 대행하는 광고대행사까지 가세했다. 소비자인 척 다이어트로 효과를 봤다며 SNS 댓글을 수백개 남기거나 제품 섭취 전·후 체형 변화 사진, 체중변화 영상 등을 올린 뒤 베스트 리뷰로 지정해 50만원 상당 적립금을 제공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스스로 지급한 적립금은 SNS 내 타깃 광고 플랫폼인 ‘스폰서 광고’ 비용으로 썼다.


심지어 한 유튜버는 다이어트 보조제를 설명하면서 약국 내부를 배경으로 흰 가운을 입고 촬영해 약사가 설명하는 것으로 오인토록 하는 영상도 올라와 논란이 됐다. 게다가 해당 제품은 약국에서 판매되지도 않는 품목이다. 흰 가운을 입는 게 현행법 상 위법은 아니지만 배경이 실제 약국으로 나온 만큼 도를 넘었다는 평가다.


이처럼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난립하자 SNS에서 화제된 제품이 진짜 효과가 있는지 검증해보는 ‘크리에이터’(광고비를 받기 시작하는 유튜버)가 등장해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먹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었지만 살이 더 찌거나, 세탁기에 넣기만 해도 외부 세탁조 청소가 된다는 세제를 사용했지만 효과가 없음을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이 유튜브 채널 시청자는 “실상을 검증해 신뢰를 얻었다는 비판적 크리에이터들도 언젠가는 광고성 영상을 만들지도 모르겠다”며 “효과없는 것을 증명하는 영상은 대체로 믿고,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는 영상은 거르면서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8월까지 전체 온라인 건강기능식품 허위·과대광고 및 기준·규격위반으로 적발된 건수는 총 6만2599건으로 이 중 허위·과장광고가 4만90건에 이르고 기준·규격위반도 2만2509건으로 확인됐다. 2018년에만 1만921건이 적발된 만큼 앞으로 연간 적발 건수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건강기능식품 이상사례 신고 건수도 2015년 502건에서 2018년 964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고 5년간 총 피해 건수는 3754건에 달했다.


품목별로는 영양보충용제품이 1135건,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 635건, DHA/EPA 함유 유지제품 298건, 홍삼류 184건, 가르시니아캄보지아추출물 176건, 백수오등복합추출물 제품 142건, 프락토올리고당제품 138건 순이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인플루언서를 이용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부당한 광고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하겠다”며 “고의·상습 위반업체는 행정처분과 함께 고발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의 과장광고 처벌은 즉각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6월 건강기능식품의 사전 광고 심의가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현행법상 위반 사례를 적발해도 법원 판례가 많지 않아 선고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선고가 지연되는 만큼 실제 처벌은 보류 또는 감면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식품산업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일반 건강식품에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기능성을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정고시안을 발표해 허위·과장광고가 난무할 것으로 관측된다.


건강기능식품 업계 관계자는 “건기식의 사전심의 없이 광고가 허용되고 일반 건강식품까지 기능성 표기가 허용된다면 소비자가 직접 건강식품·건강기능식품의 성분·효능 등을 확인하고 걸러내야 한다”며 “전문적인 내용을 모르는 소비자의 피해가 지금보다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헌 차의과대 의료홍보미디어학과 교수는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교육을 통한 국민영양 관련 미디어 이해 및 수용자의 리터러시(文解) 교육이 전무하다”며 “자연스럽게 정보를 접하고 분별력을 향상시키는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익광고 같은 소극적 형태가 아니라 교육 과정 속에서 광고에 따른 구매행태 변화, 허위과장 콘텐츠 식별 능력 등을 포괄하는 소비자학 개론 수준을 가르칠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충성도 높은 팔로워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들이 휘두르는 말의 칼날은 소비자의 주머니에 구멍을 내고 부당이득을 훑어낸다. 누군가 허위과장 광고로 재미를 보는 동안 소비자는 허접한 제품을 사서 후회하게 된다. 인플루언서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 과거 전력과 기만성을 감안한 비례적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조·판매자들은 기존 건강기능식품 관련 광고에 제약이 많고 심의 규정이 너무 까다로워 마케팅 재량이 없다고 불만이다. 이 틈을 노려 상대적으로 제제가 느슨한 인플루언서들이 활개를 친다. 마케팅에 대한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면서 허위과장 광고를 엄정하게 처벌할 묘안은 없을까. 유감스럽게도 건강기능식품이나 향후 기능성이 허용될 건강식품은 약과 식품의 경계선상에 놓여진 존재의 특성상 사실에 가까운 홍보냐, 과장 광고냐는 논란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현란한 인플루언서의 말 속에 필요한 것만 주어담을 수 있는 문해력이 요구된다. 수고롭지만 조금만 수준 높은 검색을 해봐도 과장된 것은 알아챌 수 있어 다행이다.

손세준 기자 smileson@health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