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노동자, 24시간 맞교대 대신 관리원 전환 등 가능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2.12 조회수 171
김남수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허브사업단 전문위원이 지난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내 사무실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근무체계 개편을 주제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김남수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허브사업단 전문위원이 지난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내 사무실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근무체계 개편을 주제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주간경향]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임금과 입주민이 내는 관리비는 비례관계다. 경비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입주민의 관리비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관리비 상승이 곧 경비원 감축 등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경비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도 속앓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부분이 24시간 맞교대를 서는 경비노동자의 휴게시간(무임금)을 늘려 최저임금 상승분을 실질적으로 깎는 ‘꼼수’까지 횡행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등장한 대안이 경비노동자의 ‘근무체계 개편’이다. 24시간 맞교대제를 아파트단지별 특성에 맞게 다른 근무형태로 변경하는 내용이다. 청소·분리수거·주차관리·택배물품 보관 등 관리업무의 소요가 많은 단지는 경비원을 ‘관리원’으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면서도, 입주민의 관리비 상승 부담을 덜고 서비스의 만족도까지 높일 수 있는 묘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서울의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근무체계 개편을 위한 무료 컨설팅을 진행했다. 전국에서 이런 컨설팅 사업을 벌인 건 처음이다.

김남수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허브사업단 전문위원(41)은 이번 컨설팅 사업의 실무를 총괄했다. 김 위원은 “경비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초래하지 않고 건강권 확보를 위해 24시간 맞교대제 개편을 원칙으로 삼았다. 아울러 입주민의 관리비 증가분을 최소화하는, 현실적인 ‘주고받기’가 이뤄지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에는 모두가 사업 진행이 쉽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며 “그러나 개편안의 수용도와 만족도가 기대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다만 내년도 사업 진행이 불투명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컨설팅 사업은 취약계층인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하고, 아파트 구성원들의 ‘상생’이라는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내 서울노동권익센터 사무실에서 김 위원을 만났다.


-컨설팅 취지는.

“아파트 경비노동자 대부분이 24시간 맞교대로 일한다. 전근대적 근무방식이다. 건강에 해롭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10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돼 청소·분리수거·주차관리 등 몇몇 업무가 경비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에 포함됐다. 합법적인 업무가 늘어난 것이다. 또 경비노동자는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받으면 감시단속직 노동자로 분류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휴게, 휴일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감시직 승인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늘 있었다. 노동부가 지난해 10월 감시직 승인 요건을 강화하면서 분쟁의 소지가 커졌다. 경비노동자가 일반노동자로 전환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으면 연장근로 및 휴일수당 등을 지급받게 된다. 임금이 많이 오르는 것이다. 경비노동자의 처우는 개선되지만,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임금 인상에 따른 관리비 부담을 이유로 대량 해고를 단행할 우려도 상존한다. 이런 고용불안을 방지하면서도 관리비 상승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24시간 맞교대를 개편하자는 게 이번 컨설팅의 목적이다.”

-컨설팅 대상 선정 기준은.

“어떤 아파트단지에선 임금을 깎거나 인원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신청하기도 했다. 이런 곳은 취지와 맞지 않아 제외했다. 단지의 규모, 경비원 수, 사용 승인 시점 등을 고려했다. 자동 경비시스템이 구축된 신축보다는 경비노동자가 주로 업무를 수행하는 구축 단지, 교대제 개편 설계가 가능한 수준의 경비노동자 인원이 확보돼 있는 단지 등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주관식 항목에 기재한 신청 사유를 통해 근무체계 개편 수용성이 높을지를 판단하는 등 정성적 평가도 이뤄졌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순탄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국의 민간 또는 민간위탁 노동센터와 노동조합 등이 연대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이 이 사업을 제안했는데, 목적이 확실했다. 해고 등 고용불안을 일으켜선 안 되고 건강권을 위해 24시간 맞교대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것들을 전제로 깔고 사업을 시작했다. 입주민들이 부담하는 인건비의 증가분을 최소화하는, 현실적인 ‘주고받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을 썼다. 현장에서 컨설팅을 수행한 노무사들은 노동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다. 사명감을 갖고 했다. 전국에서 처음 하는 사업이라 더욱 그랬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와 올해 진행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근무체계 컨설팅’ 결과. 서울노동권익센터 제공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와 올해 진행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근무체계 컨설팅’ 결과. 서울노동권익센터 제공

컨설팅은 모두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1차는 지난해 10~12월 22개 단지, 2차는 올해 3~5월 11개 단지가 대상이었다. 노무사가 현장을 방문해 사업을 설명하고, 교대제 개선의 인식 및 면접 조사를 시행했다. 기존 교대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아파트단지별 특성에 맞는 개편안을 제시했다. ‘아파트 입대의’가 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했다. 33개 단지 가운데 3곳이 전면 수용, 15곳이 부분 수용 등 단지 18곳(55%)이 수용 의사를 밝혔다. 나머지 단지는 ‘추후 검토’ 견해를 밝혔다. 지난 7~8월 진행한 3차 컨설팅은 사후관리에 해당한다. 컨설팅 전체 만족도는 평균 4.55점(5점 만점)으로 집계됐다.

“입주자들이 관리비 인상에 민감한 것만은 아니었다. 개편안에 따라 경비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줄면서 임금인상률이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낮아진 단지가 있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노동자 임금을 걱정해 식대 인상을 수용했다.”

-세 번에 걸쳐 진행한 이유는.

“지난해 컨설팅을 시작해 한 번에 사업을 마무리하는 게 본래 계획이었다. 예산 2억원 가운데 1억원가량이 남았다. 잔여 예산을 올해로 이월하면서 2차 컨설팅을 하게 됐다. 그런데도 예산이 더 남아 3차 컨설팅까지 했다. 토막토막 진행했다. 애초 사업을 설계할 때는 전체 과정에 사후관리까지 포함시켰다. 4~5개월 단기간에 사후관리까지 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애초 1년짜리 사업으로 설정해 놨다면 일관성 있게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파트 입대의에서 관리비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았는지.

“꼭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개편안을 수용한 단지만 놓고 보면, ‘임금이 너무 떨어지면 경비노동자들이 이런 개편안을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인 입대의도 있었다. 입대의가 경비노동자의 처우를 적극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 곳도 있다. 물론 일반화시킬 순 없다. 컨설팅한 곳이 많지 않고 단지별로 처한 상황과 구성원의 성향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관리비가 올라가면 입대의가 무조건 싫어한다는 인식을 갖고 단순하게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사례를 든다면.

“한 아파트단지는 개편안에 따라 실제 경비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줄면서, 임금인상률이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낮아지게 됐다. 개편 전보다 임금이 줄어들었다. 입주민 입장에선 관리비가 감소하지만, 임금 측면에서 경비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입대의에서 경비노동자의 임금을 걱정했다. 컨설팅을 한 노무사가 식대를 1만원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입대의가 수용했다. 노동시간 감소로 임금이 줄어든 사례도 있기는 하다. 경비노동자들이 저녁 시간에 퇴근하면서 근무환경이 나아졌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개편안을 수용했다.”

컨설팅을 받은 한 아파트단지는 주차공간이 협소해 만성적인 주차난을 겪고 있었다. 가구당 주차 가능 차량이 0.5대에 불과했다. 대리주차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이를 경비노동자가 수행했다. 경비초소에 입주민들의 자동차 키를 걸어놓을 정도였다. 감시직 승인을 받은 경비원이 대리주차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 단지는 컨설팅을 통해 경비원 12명을 전원 관리원으로 전환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도록 했다. 기존 24시간 맞교대제도 개편해 야간근무 인원을 줄였다. 관리원 전환에 따라 임금이 상승했지만 근무시간을 줄여 오름폭을 최소화한 것이다. 입대의는 관리원 전환에 따른 12% 임금 인상안도 수용했다. 컨설팅 당시 관리소장을 맡았던 A씨는 “대리주차를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며 “입주민들이 주차 문제로 경비원들이 고생한다는 점을 인정해 임금 인상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기존 경비원 가운데 일부만 관리원으로 전환하거나 불필요한 야근을 줄여 퇴근형 격일제로 변경한 사례도 있다.

“컨설팅 이후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한데, 내년 사업이 불투명하다. 경비노동자 같은 취약층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다. 오세훈 시장이 표방하는 ‘약자와의 동행’과도 들어맞는다.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너무 아쉽다.”

-부분 수용은.

“입대의가 개편안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일부만 받아들이거나 자체적으로 수정해 적용하기도 했다. 지난해 컨설팅을 받은 단지 중 전면 수용 단지는 1개였는데, 지난 3월 조사해 보니 부분 수용했던 5개 단지가 개편안을 전면 수용해 시행하고 있었다.”

-1년 미만 초단기 계약 문제의 개선 사례도 있는지.

“한 아파트단지는 컨설팅을 했는데 뭔가 크게 바뀔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 경비노동자들은 3개월 계약을 맺고 있었다. 노무사가 고용안정을 위해 1년 단위 계약을 제안했고 입대의가 이를 받아들였다. 다른 단지에 비해 경비노동자의 연령대가 고령이었다. 이 때문에 계약기간 연장에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어려웠던 점이나 장애 요소는.

“사업 자체에 대한 반감이었다. 첫 회의부터 입대의 회장이 위압적인 태도를 보인 곳이 있었다. 노무사들에게 ‘당신들 어디서 왔느냐, 민주노총에서 온 것이냐’, ‘공무원들을 불러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색안경을 끼고 봤다. 시청이나 구청 소속 공무원들이 동행했다면 수용도가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일부 단지의 입대의는 경비노동자를 상대로 한 반감이 너무 컸다. 경비노동자는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 판단, 감시직으로 분류해 근로기준법의 몇몇 부분을 적용하지 않는다. 입주자들은 이런 제도의 이해 없이 일반노동자로 바라본다. 몰이해로 빚어진 반감이다. 일부 경비노동자들도 ‘컨설팅이 고용불안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등 막연한 오해가 있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진행한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근무체계 개편’의 만족도 조사 결과. 서울노동권익센터 제공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진행한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근무체계 개편’의 만족도 조사 결과. 서울노동권익센터 제공

-사업을 평가한다면.

“외형적인 수치상 만족도와 수용도가 높기는 하다. 그러나 내적·질적으로 성과를 100% 담보한다고 확신할 순 없다. 개편안 마련을 위해 입대의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살짝 그 취지를 온전히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어서다. 급격한 임금 하락 등이다. 컨설팅 기간이 짧다 보니 경비노동자 당사자들과 충분한 논의를 했는지, 이해와 설득의 초점이 관리사무소장이나 입대의가 아니었는지 등은 평가를 통해 되돌아봐야 할 지점이라고 본다.”

-아쉬운 점은.

“개편안 시행 이후에 입대의가 바뀌거나 관리사무소장이나 경비원들이 자연 퇴사하는 등 환경이 바뀌었을 여지가 많다. 컨설팅 이후에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내년에는 사업이 불투명하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책정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처럼 조직하기 힘든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다. 상생이라는 취지에도 부합한다. 또 오세훈 서울시장이 표방하는 ‘약자와의 동행’과도 들어맞는 사업이다. 컨설팅을 통해 입주민과 관리사무소, 경비노동자들의 인식을 자연스럽게 개선할 수 있다. 이점이 상당히 많은 사업이다.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너무 아쉽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자체 예산도 줄었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