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소장, 지하전기실서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져…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2.20 조회수 160

화재경보기가 울리는데도 아파트 관리직원의 지시로 환풍기 설치 작업을 이어가던 지하 전기실에서 관리사무소장이 이산화탄소(CO₂)중독으로 숨진 것과 관련해 법원은 시공업체, 기계·전기관리자, 위탁사에게 책임을 물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정완 부장판사)는 A씨의 유족이 B환풍기설비업체, C기전관리자, D위탁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들은 공동으로 유족에게 69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 광진구 소재 모 아파트의 A소장은 2018년 8월경 지하 5층 전기실 내부의 악취를 없애기 위해 B환풍기 업체 직원 E씨에게 의뢰했다. E씨는 B사의 다른 직원 F씨에게 벽에 구멍을 뚫는 천공 작업을 지시했다. 천공 중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아파트 기전관리자 C씨는 전기실 탄소배출장치에 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조치한 뒤 F씨에게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이때 천공작업으로 벽 내부의 전기배선이 파손되면서 탄소배출장치가 오작동해 이탄화탄소가 순식간에 퍼졌다. 

A소장은 현장 확인차 전기실로 내려갔다가 이산화탄소에 중독됐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으나 저산소성 뇌병증 진단을 받고 3년 넘게 투병 중 지난해 3월 숨졌다. 이에 A소장 유족은 B사, C씨, D사, 입주재대표회의 등에 일실수입, 병원비 등으로 1억여 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B사 측은 “A소장이 개인적으로 직원 E씨를 고용해 작업을 진행했으므로 A소장이 E씨의 사용자며, A소장이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전기실에 출입해 사고가 발생했다”며 자사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C씨와 D사 측은 “화재경보기가 울렸을 때 적절한 조치를 했고, 이후 발생한 사고는 해당 조치와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C씨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B사와 D사에도 C씨와 E씨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물어 A소장과 유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전기실 벽면에 화재감지기와 탄소배출장치가 있었고 벽 내부에 연결 배선이 있었으므로 벽 뚫기 작업 전 위험요소를 확인했어야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전기배선 지식이 전혀 없는 E씨는 전기배선 위치에 대한 고려 없이 F씨에게 작업을 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E씨의 과실이 사고의 원인이 된 이상 A소장이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 발생에 기여했더라도 E씨의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 

재판부는 또 “기전관리자 C씨는 작업 현장을 벗어나 있다가 화재경보기가 울려도 원인 파악 없이 계속 작업할 것을 지시했다”고 질타했다. 화재경보기가 울린 시점으로부터 불과 15분 내 사고가 발생한 점을 비춰보면 C씨가 화재경보 원인을 정확히 파악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다만 “A소장은 아파트의 총 관리책임자로서 작업 지시 전 전기배선의 위치 등을 확인해 작업자에게 알려줘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하는 점 등을 고려해 피고들의 책임을 55%로 제한한다”며 6900여만 원 배상을 판결했다.

재판부는 “입대의는 아파트 관리를 위해 D사와 관리계약을 체결했을 뿐이며 작업을 지시한 사업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입대의의 책임은 없다고 봤다.

사고와 관련해 C씨와 E씨는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기소돼 2020년 5월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부터 각각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과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F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상현 기자 spark@hapt.co.kr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