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자체의 갑질 시정명령 ‘종이 호랑이’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3.09 조회수 196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입주민이나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부당간섭, 폭행 등을 당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에 사실 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 하지만 고발은커녕 시정명령조차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고 시정명령 효과도 작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동주택관리법에는 입대의가 사실조사 의뢰나 시정명령 등을 이유로 소장을 해임하거나 해임하도록 주택관리업자에게 요구할 경우 과태료 1000만 원을 부과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관리현장에서는 “입주민으로부터 부당대우를 받아도 근로계약 갱신 걱정 때문에 위탁사에 보고하거나 지자체에 사실 조사를 의뢰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문제가 되는 경우 위탁사가 입주민의 소장 교체 요구를 수용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에 소장들은 불만을 억누르고 위탁사의 인사이동 명령을 따르고 만다는 것. 결국 공동주택관리법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6월 인천의 모 아파트 A소장은 노후변압기 교체 공사 중 단전에 불만을 품고 관리사무소로 찾아온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했다. A소장도 지자체에 조사를 의뢰하는 대신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택했다. A소장은 “폭언·폭행 문제로 지자체를 찾아가도 가해자의 혐의를 입증해야 하고 절차가 복잡할뿐더러 지자체가 시정명령을 내려봤자 강제성도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자체의 시정명령을 받고도 재차 소장의 업무를 방해한 사례도 있다. 충남 천안의 모 아파트 B동대표는 지난해 8월 C소장이 진행하려던 공사를 방해한 행위로 천안시청으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B동대표는 아파트 공청회에서 C소장의 팔을 끌어당기고 찰과상을 입혀 같은 해 10월 다시 시정명령을 받았다. 

피해 소장은 ‘부실한 보호장치’인 공동주택관리법에 기대기보다 종전처럼 사법당국을 찾게 된다. 충북 옥천군 모 아파트 D동대표로부터 폭행을 당한 E소장이 그런 경우다. D씨는 지난해 5월 관리사무소에서 관리규약 개정 제안서 출력 등 문제로 E소장과 말다툼을 벌이다 E소장을 밀어 넘어뜨린 뒤 다리를 걷어차고 목덜미를 잡고 밀쳐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판사 원운재)은 상해, 업무방해, 재물손괴 등 혐의로 D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런 관리현장의 현실에 공동주택관리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일 소장에게 폭언·폭행이나 부당한 업무를 지시한 입주민에게도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선미 대한주택관리사협회장도 “입주민에 대한 과태료 조항이 신설되면 법령을 위반하라는 지시나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소장이 정확한 증거를 확보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F소장은 “갑질에 과태료 1000만 원이라면 입주민도 조심할 것”이라며 법 개정안을 환영했다. 부산의 G소장도 “과태료가 생기면 현장 효과가 즉각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경기 용인의 모 아파트 H소장은 “과태료 처분보다 벌금이나 징역형 등 강력한 처벌 조항이 있어야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입주민들이 소장을 전문가로 보는 인식 개선 및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입주민 단체는 개정안에 대해 “입주민의 손발을 묶는 과도한 규제”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김원일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회장은 “부당 간섭 행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입대의나 입주민으로서는 심한 경우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큰 금액의 과태료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밝혔다. 그는 박 의원실을 방문해 법안에 대해 항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상현 기자 spark@hapt.co.kr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