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이 단지에 붙인 공지문, 관리소장이 뗄 수 있나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4.16 조회수 272

[권진성의 시선]

권진성 변호사/부산 수영구의원
권진성 변호사/부산 수영구의원

부산 남구의 한 대규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부터 문의 전화가 왔다. 누군가 관리사무소 허락을 받지 않고 공지문을 부착했다는 것이었다. 관리사무소는 이를 불법 부착물로 생각해 제거하려는데 형사적으로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했다. 부착물 제거 시 손괴죄로 처벌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듯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많은 부착물을 볼 수 있다. 주위 상가나 보습학원의 상업성 전단부터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동대표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여지가 있는 비방용 전단까지 그 부착물도 다양하다.

나는 과거에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치킨 프랜차이즈를 운영한 적이 있다. 당시 관리사무소의 허락 없이 아파트에 수천 장의 전단을 가지고 들어가 각 호실 문틈 사이로 끼워 넣거나 테이프로 문 위에 부착하곤 했다. 전단 1000장을 뿌리면 새로운 고객 한 명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렇게 주문한 사람은 단골이 됐다. 

몰래 전단을 뿌리던 어느 날, 입주민 신고로 경비원이 출동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경비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다시는 전단을 몰래 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경찰에 신고당하는 일을 면했다. 

아파트는 주로 외부와 경계 지점인 경비실(주로 차량 출입문)을 기준으로 단지 전체를 공동생활 공간으로 본다. 따라서 외부인이 허락 없이 단지 내부로 들어와 주거자나 관리인의 평온을 침해한다면 건조물침입죄 구성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 사정이 있는지가 문제 될 것이다.

외부인이 단지 내부에 불법적으로 침입해 전단을 부착한 경우, 아파트 측이 이러한 부착물을 제거한다면 손괴죄가 성립할까. 손괴죄는 타인의 재물 등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일반적으로 상업적 전단이라면 전단 소유자는 불법 전단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수거해 전단의 효용가치가 상실돼도 손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문제는 아파트 입주민이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 등의 활동에 불만을 품고 이들의 업무를 비판하는 글을 관리사무소 허락 없이 부착하는 경우다. 이때 비판적 공지 내용이 단체 구성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면 명예훼손죄 구성요건에 해당할 수 있고 위법성을 조각시킬 만한 사유가 있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아파트 입주민이 어떠한 이유로 입주민들의 의견을 취합하기 위한 공적인 글을 부착한 경우,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허락 없이 부착했다는 이유로 부착물을 제거할 수 있을까. 이는 입주민들 표현의 자유와 충돌되기에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아파트 관리규약 준칙 등에 이러한 문제 해결 규정이 존재한다면 비록 그것이 손괴죄 구성요건에 해당할지라도 관리사무소의 정당한 업무로 인한 행위에 해당해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될 것이다. 규정이 없는 경우라면 그 판단은 쉽지 않다. 

위법성이 조각되기 위해서는 부착물 제거행위의 목적 등이 법질서의 정신에 합치되고 제거행위의 긴급성과 보충성을 고려해 수단이 정당하고 적합해야 한다. 예컨대 부착물을 게시한 자에게 스스로 철거할 기회를 주고,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 제거해 게시자에게 되돌려 주는 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자치적 분쟁조정기구가 있다면 이를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다. 각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근거해 설치된 공동주택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한 해결 방법도 있으나 현재 이러한 제도를 통한 해결이 활성화돼 있는 자치단체는 없어 보인다. 

아파트 내부적 분쟁이 자치적 규정 미비, 내부 분쟁조정기구 미설치와 형식적 운영 등으로 인해 감정적 충돌로 이어져 외부적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주로 형사법적으로는 폭행, 명예훼손, 손괴로 민사적으로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으로 다툰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민이 공동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분쟁 해결 규정들이 세밀하지 못하고 자치적 조정 기구의 역할도 형식적이고 미미한 수준이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규정 등을 잘 살펴보고 미비점이 있다면 조금씩 그 부분을 채워나가야 한다. 세밀한 규정을 두면 그만큼 분쟁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