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이름을 바꾸고 단지 내 공용시설을 보수하거나 새롭게 들여와 다른 차원의 공동주택으로 거듭난 곳이 있다. 경기 수원 화서역 파크뷰아파트는 20년간 써온 이름을 버리고 2021년 지금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개편 작업의 중심에 현역 예술가인 이정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있다. 그가 재탄생 스토리를 들려줬다.
- 아파트 이름을 왜 바꿨나.
“입주 초기부터 바꿀 생각을 했다. 건물은 좋은데 ‘부도난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라는 이미지 때문에 주변 단지보다 저평가받았다. 2019년 입대의 회장에 당선되면서 본격 추진하게 됐다.”
- 이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맞다. 아파트도 하나의 상품이어서 생산자 동의 없이 이름을 바꿀 수 없다. 우리로서는 건설사가 폐업한 상태여서 동의절차를 생략할 수 있었다. 개명 준비에 2년이 걸렸고 이어 단지입구와 건물외벽 등의 간판을 바꿔 달아야 했다. 재탄생을 자축하기 위해 공용부분 개보수도 계획했다. 장기수선충당금부터 확인하고 주민동의를 거쳐 장충금을 대폭 인상했다. 그 후 단지 곳곳에 게시판을 걸고 공모 끝에 지금의 이름을 확정했다.”
- 공용부분은 어떻게 고쳤나.
“개명 절차를 모두 마친 다음 단지입구에 대형 입간판을 세우고, 건물외벽 재도장 후 LED조명을 달았다. 단지 곳곳에 조경과 잘 어울리도록 조형물을 배치하고, 주차차단기, 자동문, 장애인램프도 설치했다. 재활용터는 눈비가 내리면 엉망이었는데, 큰 폐기물을 실은 트럭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높은 벽과 지붕을 설치했다. 별도 공간에는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문을 달았다. 사계절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니 입주민들이 무척 좋아한다.”
유근식 관리사무소장은 “이름 바꾸기와 공용시설 개보수 과정에서 설계와 디자인 등을 회장이 도맡았다”면서 “현직 예술가로서 창작활동에 바쁜 와중에도 서체와 색감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지정하며 재능기부를 톡톡히 했다”고 말했다.
- 흡연부스 팻말이 있던데, 아파트에선 처음 본다.
“최근 많은 입주민의 찬성으로 금연아파트로 지정됐다. 흡연자들의 서운함도 배려해야겠다고 생각해 은행 현금지급기박스 중고품을 저렴하게 구입해 설치했다. 에어컨 등을 말끔하게 정비한 후 내부에 환풍기와 공기정화기까지 설치해 이용하도록 했다.”
- 아파트 관리 지식이 많은 것 같다.
“미대 졸업 후 대형건설사에서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일을 했다. 작품 활동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몇 년 직장생활로 자금을 확보한 뒤 독립하자고 마음먹었는데, 회사 따라 중국 인테리어업계에도 진출하는 등 샐러리맨 기간이 좀 길었다. 그 덕에 지금은 개인 작업실을 마련해 창작에만 몰두하고 있다.”
- 개명과 시설 개보수 후 집값이 올랐나.
“올랐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모두 오르지 않았나. 중요한 것은 상승보다 하락을 막았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최근 아파트가격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우린 다른 곳보다 덜 빠졌다.”
윤희숙 동대표는 “회장이 겸손하게 말하는 것일 뿐, 개명 전후 차원이 달라졌다”면서 “외관까지 확 바뀌고 나니 시장 반응이 달라졌고 기대 이상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그는 “입주민들이 40대 젊은 회장을 잘 뽑았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한다”면서 “4년 중임 임기까지 마쳤지만, 입주민 합의로 재신임해 임기가 2년 더 연장됐다”고 덧붙였다.
유 소장이 이런 조언을 남긴다.
“2002년 주택관리사 자격취득 후 여러 단지에서 근무해 봤지만 회장이 직접 나서 개명과 시설 개보수로 재탄생시키고, 가치가 뛴 아파트는 처음이다. 사라진 건설사 이름을 가진 아파트가 전국에 아직도 많다. 건설사 부도로 브랜드가치가 하락한 곳이라면 입주민을 위해 우리처럼 새롭게 출발하는 것도 해볼 만하다.”
- 입대의 회장과 예술활동의 겸업이 가능한가.
“가정과 일을 분리하려고 작업실을 일부러 외부에 마련했다. 그래서 별 지장은 없다. 다만 간혹 억지 민원을 제기하는 입주민으로 인해 힘들 때가 있다. 그런 분들에게는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석해 공식안건으로 제출하라고 한다. 그러면 또 대부분 입을 닫는다. 입대의 회장은 주어진 책무만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