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41개 조문 중 뭘로 때릴지…“아파트가 ‘과태료 뷔페’ 같아”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6.18 조회수 254


경기 화성시 모 아파트 소장 A씨는 지자체로부터 ‘핀셋 감사’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경기도 감사에서 자신 있게 모든 서류를 제출했지만 감사 당일 “이건 과태료다”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감사관은 아파트의 수많은 서류 중 유난히 주택관리사 보증보험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다 알고 나와 찍어내는 기획감사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소장은 배치된 날에 보증보험 등 가입 서류를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관리업무 인수인계를 마무리하고 보증보험에 가입하며 보증기간을 소급하는 일이 관행처럼 됐다는 게 A소장의 설명이다.

경기도는 2022년 하반기 공동주택 기획감사 후 지난해 12월 ‘아파트 게시판에 주택관리사 보증보험 가입 공개’를 골자로 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이를 본 A소장은 “지자체가 현장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감사에서 증거를 잡은 뒤 정책 제안을 하는 식으로 건수를 올리는 것 같다는 의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A소장 건은 다행히 화성시가 현장의 어려움을 듣고 과태료 대신 시정명령 처분을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지자체는 매년 ‘주택관리업자를 최저낙찰제 방식으로 선정한 단지’, ‘관리업무 공개를 소홀히 한 단지’ 등 일정한 기준에 맞춰 기획감사 대상을 선정하고 있다. 기획감사의 방향에 따라 과태료 사유는 더 많아진다.

아파트에 과태료를 때릴 근거는 이미 지나칠 정도로 많다. 아파트 관리 현장에서 ‘공동주택은 지자체가 필요로 하는 과태료를 골라 담을 수 있는 뷔페 같다’, ‘아파트를 돈 빼 가는 ATM 정도로 여긴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과태료를 때릴 수 있는 근거 조문이 아주 많아요. 이 중에 하나 골라서 아파트에 부과하는 건 힘든 일이 아니죠.”

한 지자체 공동주택 담당자는 공동주택에 난무하는 과태료 실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공동주택관리법 위반행위에 따른 과태료 조문은 △2000만 원 이하 1개 △1000만 원 이하 7개 △500만 원 이하 33개로 총 41개다. 타법의 과태료 규정은 집합건물법에 총 13개, 공인중개사법에 19개, 감정평가법에 8개 조문이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의 과태료 가짓수는 이들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 많은 셈이다.
 

과태료 사유 절반이 사업자선정지침 위반

지자체는 41개 과태료 조문 가운데 주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위반이라는 칼을 꺼내 든다.

한국주택관리연구원이 서울, 경기, 인천 26개 지자체가 공동주택에 부과한 행정처분 사례를 조사한 결과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때린 과태료는 총 691건이었다. 과태료 처분 사유 중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위반행위가 383건(55.4%)으로 절반을 넘었다. 계약서 공개의무 위반은 96건, 장기수선계획 규정 위반은 30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관리 전문가들은 아파트에서 위탁관리업체, 유지보수업체 등 다양한 업자 선정이 이뤄지는 만큼 감독 당국이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담합 등 비리에 주목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 공동주택관리법령과 별도로 세세하게 규정된 사업자선정지침이 42개 조항이나 되다 보니 지침 위반으로 걸리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봤다. 김지혜 변호사(법무법인 산하)는 사업자 선정 과정 중 특히 △입찰공고 내용 누락 △선정지침 위반해 수의계약 체결 △과도한 입찰자격 제한 등이 문제가 된다고 소개했다.
 

“포괄 규정은 악질”…감사 목적 되새겨야

관리 전문가들은 41개 과태료 조문 중 ‘공동주택을 이 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명령이나 처분을 위반한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을 ‘악질 규정’으로 꼽았다. 이들은 “포괄적인 규정이 과태료 폭탄을 야기한다”고 지적하면서 “이 규정은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영화 변호사(한영화 법률사무소)는 “포괄 규정은 과태료 조문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삭제하거나 위반행위를 특정하는 방법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2001년 1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 법과 이 법에 의한 명령에 위반하여’라고 돼 있는 처벌규정이 “금지하고자 하는 행위 유형의 실질을 파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는 결정이다. 

41개나 되는 과태료 조문은 어떻게 정비해야 할까. 우선 강은택 한국주택관리연구원 연구위원은 “타법에 비해 과다한 과태료 조문을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맞춰 전체적으로 손보고 지도감독을 통해 달성 가능한 조문은 조정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반면 모 관리단체 관계자 C씨는 “과태료 조문 중 일부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국토부가 입주민들의 관리비 관련 민원을 뒤로 한 채 이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 하지만 그도 “포괄 규정은 어떻게든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에서 공동주택업무를 다뤘던 D씨는 “2013년 한 매체의 아파트 관리비리 보도 이후 관리 투명화를 이유로 외부회계감사 및 전자입찰제를 도입하는 등 공동주택 관리제도가 점점 무거워지고 위반행위에 대한 처분이 강력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후 공동주택 관리제도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관리비리는 크게 감소해 처벌 조항을 줄일 여지가 생기긴 했지만 안전, 환경 등 각종 의무가 도입되면서 오히려 과태료 조문이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D씨는 “과태료 규정을 당장 정비하지 않더라도 지자체의 무분별한 과태료 부과 행태는 꼭 개선돼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공동주택관리법에서 시정명령,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을 지자체의 재량행위로 규정한 것은 지도·계몽 차원의 관리 감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라며 “지금부터라도 행정지도, 교육, 계몽을 목적으로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 고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