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 통장’ 관리 꼬이게 만드는 법령, 개정 서둘러야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7.07 조회수 142

‘아파트 관리비 통장은 안녕하신가요.’ 아파트 입주민의 재산인 관리비 통장의 명의자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몰래 통장을 재발급받아 돈을 꺼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돼 관리사무소장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관리현장에서는 “관련 법령을 정비해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석 달째 방관하고 있다.

경기도 모 아파트 입대의 A회장이 지난 3월말 B소장을 패싱해 C은행지점에서 단독으로 아파트 관리비 통장을 재발급받은 것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금감원은 B소장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은행의 업무처리는 금융 관련 법규나 내규를 위반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회신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본보는 사설로 금감원의 이 같은 해석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국토부에 대응을 촉구했다.
 

금융당국 “법대로 관리주체 명의로”

금감원은 기본적으로 ‘공동주택관리법령의 취지까지 고려한 금융업무처리 기준을 만들어 금융회사가 따르게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실명제법령 등 거래 기준에 어긋나지 않으면 거래할 뿐이며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처럼 ‘통장에 누구 직인을 찍느냐’는 관심이 없다는 것. 

금융감독 정책을 다루는 금융위원회 한 관계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파트 관리비 통장을 공동주택관리법 제23조에 따라 관리주체 명의로 발급하면 아무런 논란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법령에 ‘관리비를 관리 주체에게 납부한다’(법 제23조 제1항)고 돼 있으니 그렇게만 해도 문제가 안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의 시각은 해당 아파트의 경우 단체의 대표자인 입대의가 관련 증빙을 갖고 은행을 방문해 통장 재발급을 요구하면 은행이 들어주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은행의 통장 재발급을 문제 삼지 말고 애초부터 관리주체 명의로 통장을 관리해 문제 소지를 없애라는 지적이다.
 

공동주택관리법령 불명확한 규정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23조(관리비 등) 제7항은 ‘관리주체는 관리비 등을 입대의가 지정하는 금융기관에 예치해 관리한다. 계좌는 소장의 직인 외에 입대의 회장 인감을 복수로 등록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관리비 통장을 누구 명의로 할지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는데, 관리주체 명의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소장 또는 관리회사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해 집행하면 된다고 볼 수 있다. 

▷주택관리회사 “현실과 법령 엇박자”= 위탁관리를 하는 공동주택단지에서 관리주체는 주택관리회사다. 모 위탁사 D대표는 공동주택관리법 제23조에 대해 “과거 자치관리가 대부분일 때의 관행을 규정화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상황과 맞지 않으므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D대표는 “입주 초기에는 아파트 시공 주체와 계약해 관리업무를 맡은 주택관리업자가 통장을 개설해 관리비를 받으며 입주자의 과반수 입주 후 입대의가 구성되고 회장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면 관리비 인계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관리비를 관리주체에게 납부하는 것은 입주 초기에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자치 관리의 경우 과거에는 세무서가 소장 명의로 고유번호증을 발급했으나 요즘은 잘 안 해주니 입대의 회장 명의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위탁사 E대표는 “관리주체에게 관리비를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 공동주택관리법 취지에 맞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E대표는 또 “현재 공동주택관리법의 ‘관리주체’를 위탁사 또는 소장으로 제각각 해석하기도 하므로 법령상 개념 정리가 시급하다”면서 “관리비 통장도 주택관리회사, 소장, 입대의 등 3자가 견제와 균형으로 안전하게 관리하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사무소장 “금융권도 공동주택관리법 지키게 해야”= 서울의 한 아파트 F소장은 “국토부가 아파트 관리비 통장의 개설 및 재발급 등에 관해 법령을 재정비해야 한다”며 “금융 당국과 협의를 거쳐 공동주택관리 법령이 금융권에서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아파트 한 달 관리비가 평균 1억 원, 많게는 10억 원대에 이르는데 몇 안 되는 관계자가 결탁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사고 방지를 위해 관리주체와 입대의의 크로스체크가 가능해야 하며 금융권은 아파트 통장에 대한 별도의 지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부가 나서서 은행이 공동주택관리법령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세청 “입대의 회장이 대표자”

국세청은 지난 5월 질의회신을 통해 “위탁관리업체는 아파트에 대한 대표권이 없으므로 위탁관리업체 직원인 아파트 소장 명의의 고유번호는 부여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국세청은 입대의 회장 명의로 고유번호를 신청해 부여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회사들은 이를 토대로 입대의 회장을 아파트 대표로 인정해 관리비 통장을 개설해주고 있다.
 

국토교통부 석 달째 무반응

관리비 통장을 포함한 아파트 관리 감독의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통장 관리의 허점을 인지하고도 석 달째 손을 놓고 있다.

경기도 한 아파트 단지 G소장은 본보에서 관리비 통장 재발급에 관한 금감원의 해석 관련 기사를 읽고 6월 중순 국토부에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출했다. 국토부는 이 민원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민원을 지자체로 내려보냈다.

G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주무 중앙부처가 처리할 중요 사안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상황까지 빚어졌다”고 비난했다. 해당 지자체는 이 민원을 다시 국토부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호 기자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