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은 우리 단지 최고의 보물” 입주민들 엄지 ‘척’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3.07.20 조회수 127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뿐인 아파트 곁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 봄이면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 오면 여름내 정성껏 가꾼 벼를 수확한다. 낱알을 고르고 겨를 벗겨내는 탈곡작업은 어린이들에게 농촌체험의 산 교육장이 된다. 그렇게 태어난 하얀 햅쌀은 곧바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으로 변신해 아이들과 경로당 어르신들의 선물이 돼 즐거움을 선사한다.


추수 후 전통방식의 벼 탈곡체험에 참여한 어린이들.
경기 시흥시 보성아파트는 한쪽 너른 공간을 생태체험 텃밭으로 만들었다. 이 공간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생태체험을 통한 소통의 장이 되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가교가 된다.

1998년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는 입구를 들어서면 25년차에 접어든 단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갈하고 반듯하다. 굵직한 몸통을 자랑하는 나무들은 금방 이발을 마친 것처럼 단정하다. 단지 도로와 보도에는 흙먼지나 이끼가 보이지 않는다. 구석에 방치돼 용도를 잃었던 테니스장은 운동장으로 변신해 공차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가득하다.


공재성 관리사무소장
공재성 주택관리사는 2003년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 부임했다. 올해로 20년을 채웠으니 아파트 역사의 산증인이다. 입주민들은 “우리 아파트가 시흥시 최우수 모범관리단지에 세 번이나 선정될 수 있었던 데는 소장님 공로가 크다”면서 “이론과 실전에 모두 강한 공 소장님이야말로 우리 단지 최고의 보물”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지난 가을 노랗게 익어가는 벼 앞에 선 주민대표와 입주민, 외부 관람객들.
보성아파트에는 이름도 생소한 생명순환마을학교가 있다. 2012년 7월 시흥시와 학습마을 사업협약을 체결하고, 8월 ‘경기도 학습형 사회적 일자리 창출 및 학습마을 활성화 사업’에 선정됐다. 입주민들은 학습코디네이터와 마을리더, 마을강사 교육을 이수한 후 정관과 조직을 구성해 12월에 마을학교를 개교했다.

공 소장과 주민대표들은 이듬해 경기도 지원을 받아 아파트 지하공간에 강의실 3개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각종 교육과 입주민 만남이 이뤄진다. 강사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은 돌아가며 선생님이 돼 입주민들에게 각자의 지식을 전수한다. 강의실에서는 조경과 도시농업, 공동체 활동방법과 사업발굴 등 어른들의 교양을 함양한다.

학생들에게는 과외학습을 제공한다. 아이들끼리 팀을 만들어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에 신청하면 음악, 미술, 체육, 논술, 수학과 외국어 등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외부 강사료만 내면 되므로 일반 학원비보다 월등히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받는다.

아파트의 잘 가꿔진 아름드리나무들은 온통 진한 초록빛으로 반짝이며 건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가을이 오면 단지는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었다가 겨울 채비에 들어가 잎사귀들을 떨군다. 아름다웠던 낙엽은 곧 단지의 커다란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 11월 하순이 되면 직원들과 입주민들이 긁어모은 낙엽자루가 산더미를 이룬다.

 

낙엽이 마을축제 되고 거름도 되다

공 소장과 주민대표들은 궁리 끝에 낙엽을 활용한 마을 축제를 기획했다. 낙엽더미를 넓고 평평한 화단에 풀어놓고, 만추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주말에는 어린이들을 모아 낙엽 속 보물찾기 행사를 열었고, 한쪽에는 먹거리 장터를 개설했다. 포토존과 핫스팟에는 가족사진과 친구들과의 한 컷을 위해 대기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낙엽을 활용한 마을 축제 중 낙엽 속 보물찾기 행사를 진행했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에 아파트가 자연놀이공원이 됐다. 이후에도 낙엽은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퇴비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걸쭉한 퇴비로 재탄생한 낙엽은 다시 영양 만점의 나무 거름이 됐다. 완벽한 리사이클링이다.


봄부터 팔을 걷어붙인 입주민들이 꽃밭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생명순환마을학교에서는 벼만 재배하는 것이 아니다. 봄에는 허브 테마형 화단을 조성하고, 상자텃밭을 만들어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 우선 분양한다. 가을엔 곳곳에 국화꽃을 심는다. 꽃이 크게 자라면 화분에 옮겨 어르신 가구에 선물한다. 어르신 얼굴에는 함박꽃이 핀다.

공 소장과 주민대표들은 처음부터 합이 잘 맞았다. 아파트가 1990년대에 지어져 처음부터 주민활동 공간이 없었다. 입주민들은 입대의실을 고쳐 헬스장을 만들었다. 작은 유휴공간에 독서실을 개설해 어린 자녀들의 밤늦은 귀갓길을 걱정하던 학부모들의 고민을 덜었다.

 

“꼼꼼한 관리로 장충금 잔고도 쌓여”

공 소장은 이런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기록했다. 2007년 시흥시 모범관리단지 선정사업에 처음 응모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어 2011년과 2017년에도 1등을 휩쓸고, 경기도 선정 모범관리단지에도 이름을 올렸다. 아파트 정문 기둥과 대리석 게시대에는 경기도와 시흥시로부터 받은 각종 수상동판과 사업선정 현판들이 여럿 걸려있다.


단지 입구에 걸린 각종 현판과 수상 동판들.
한 입주민은 “외부 손님이 올 때마다 정문에 걸린 현판들을 보고 어떻게 이런 상을 다 받았느냐고 물어본다”며 “단지에 들어설 때 느껴지는 정갈함과 정문의 수상실적은 우리 아파트의 대표적 자랑거리”라며 활짝 웃는다.

이 아파트 입주민과 동대표들은 관리직원 배려도 1등을 놓치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시흥시노동자지원센터 도움을 받아 ‘따뜻한 공동주택 노동존중 아파트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김준석 입대의 회장은 “우리는 이웃 단지에 비해 장기수선충당금을 거의 절반수준으로 걷는데도 현재 잔고가 많이 쌓여 있다”면서 “소장과 직원들이 꼼꼼하게 관리해 대수선 공사를 계속 연기할 수 있어 돈 쓸 일도 별로 없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경기도와 시흥시는 평생교육사업과 공동체 활성화에 진심이다. 이 아파트는 2015년 시흥시가 개최한 전국 도시농업 박람회에서 모범단지에 선정됐다. 당시 입대의 회장은 박람회 위원으로 참여했다가 나중에 시 농업기술센터에 전문직 공무원으로 특채되기까지 했다. 지자체와 아파트 단지가 얼마나 찰떡궁합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공 소장은 “전에도 좋은 분들이 단지를 이끌어 왔지만 자치관리로 전환한 2008년부터 나온 입대의는 더욱 강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다”며 “전임 동대표들이 후임자에게 봉사정신과 투명성을 잘 전수한 덕분에 우리 단지가 선순환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이경석 기자 kslee@hapt.co.kr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