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금? 수선유지비? 애매한 기준이 과태료 유발!
작성자 admin 등록일 2024.01.24 조회수 95

공동주택의 장수명화를 위해 만들어진 장기수선제도가 과태료의 온상으로 지적되면서 주택관리사들의 제도 개선 요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 제도는 공동주택을 오랫동안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시설 교체 및 보수가 이뤄지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공동주택의 관리주체는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장기수선충당금을 소유자로부터 징수해 적립하고, 장기수선계획을 3년마다 검토·조정해 주요 시설의 교체 및 보수 시 장충금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불명확한 기준, 복잡한 조정 절차, 장충금 적립 금액 부족, 공사비용의 주체 등 다양한 문제를 낳는다. 이에 하원선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협회장은 “주택관리사를 힘들게 하는 장기수선제도를 뜯어고치겠다”면서 “주요 계정과목인 수선유지비와 장충금 사용의 확실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충금이냐, 수선유지비냐, 불명확한 기준

장충금은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용도 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대상이 된다. 장기수선계획 수립기준에 포함되는 공사를 장충금이 아닌 수선유지비로 집행해도 과태료 대상이다. 문제는 장충금과 수선유지비 사용 항목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 까딱하면 ‘과태료 지뢰’를 밟고 만다. 


/한국아파트신문사
한국아파트신문이 최근 전국의 주택관리사 대상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10명 중 89%가 장충금과 수선유지비 항목을 ‘확실하게 구분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공사 집행 시 장충금과 수선유지비 사용을 두고 헷갈렸던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85%나 됐다. 

지난해 과태료 논란을 이끈 경기 파주시 아파트의 사례도 배수로 덮개 교체 비용 44만여 원을 장충금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수선유지비로 사용해야 하는지의 혼란에서 야기됐다. 이 아파트 A소장은 당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 별표1 ‘장기수선계획의 수립기준’에 배수로 및 맨홀은 명시돼 있지만 배수로 덮개는 없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 동료 주택관리사들 역시 배수로 덮개는 ‘수선유지비가 맞다(74%)’고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과태료가 부과됐던 것일까. 장기수선계획 수립기준은 항목에 따라 수선방법을 전면교체, 전면수리, 부분수리, 전면도장으로 나누고 있다. 다수의 주택관리사는 장기수선계획 수립기준에 명시된 배수로 및 맨홀의 ‘부분수리’에 배수로 뚜껑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시청 주무관은 ‘부분수리’에 배수로 뚜껑이 포함된다고 판단해 과태료를 부과했다. 경기 B소장은 “장기수선계획 수립기준의 항목이 애매하고 특히 전체와 부분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러 종류의 부품이 들어가는 설비를 공사할 때면 현장의 혼란이 더 커진다. 많은 주택관리사가 “부품이 많은 승강기 공사가 까다로운 게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전 C소장은 “승강기는 수립기준에 명시된 것보다 실제 부품이 훨씬 많다”면서 “부품 교체 때마다 전체교체로 볼지, 부분수리로 볼지 헷갈려 지자체에 문의해도 지자체마다 판단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충북 D소장은 “다른 아파트에서 승강기 버튼 하나를 장충금으로 집행하지 않아 과태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했다”면서 “승강기 버튼은 소액인 데다 장기수선 항목에 포함돼 있지도 않다”고 분개했다. 

대부분의 소장은 장기수선 항목의 기준이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따르고 본다. 전남 D소장은 “옥상 슁글 교체는 장충금 사용 대상이지만, 누수로 인해 옥상 슁글에 방수페인트를 칠하는 것은 수선유지비를 사용해야 한다더라”면서 “장충금을 사용해야 하는 외벽 페인트칠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현실성 부족한 실무가이드라인 ‘혼란 가중’

주택관리사들은 장기수선계획 수립기준이 헷갈릴 경우 어떻게 할까.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가 만든 장기수선계획 실무가이드라인을 찾는다는 답변이 47%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동료 주택관리사의 조언(39%)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지자체 문의(33%) △국토교통부 유권해석 사례(20%)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설문조사 응답자 중 85%는 ‘실무가이드라인으로 인해 오히려 과태료를 얻어맞게 된다’고 여긴다. 경북 E소장은 “실무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 해석 차이가 있다”며 “특히 ‘~등’이라는 문구는 감사권자의 해석과 실무자의 해석이 달라 과태료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 F소장은 “전면수리 이외의 보수는 비용부담 주체의 의사를 반영해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해놓고 민원이 제기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분개했다. G소장은 “매번 지자체에 물어보는 것도 질렸다”고 개탄했다.

이 실무가이드라인은 현장에 ‘도움이 된다(54%)’와 ‘도움이 되지 않는다(46%)’는 응답이 비슷하게 나왔다. 하지만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주택관리사들조차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낫다”, “도움은 되지만 더 상세해야 한다”는 정도다. 현장에서 참고할 지침서가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한 주택관리사들은 “이론에 치우쳐 현실성이 부족하다”, “오히려 더 헷갈리게 한다” 등의 의견을 밝혔다. 

대주관은 자체 실무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설문조사 응답자들도 대부분(90%) 환영했다. 대전 H소장은 “협회가 관리현실을 감안해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좋겠다”면서 “과태료, 분쟁 발생 등 행정 낭비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I소장은 “화재감지기, 스프링클러, CCTV 카메라 등 소액이면서 개수가 많아 수시로 교체해야 하는 항목은 장기수선 항목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항목은 부품까지 정확히 명시 △구체적인 사례 명시 △500만 원 이하 공사 제외 △1000만 원 이하 공사 입대의 의결로 결정 등의 의견이 있었다.

반면 경기 J소장은 “협회의 가이드라인도 국토부의 승인이 없다면 현장에 혼란만 더 야기할 것”이라면서 “차후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광주 K소장도 “협회가 관련기관과 공동으로 제작하는 게 낫다”고 당부했다. 대주관 측은 “신동희 충남도회장을 중심으로 실무가이드라인 TF팀을 구성했으며 최대한 빨리 실무가이드라인을 만들어본 뒤 국토부의 감수를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부 주택관리사는 “협회에서 전문 상담원이 장기수선제도 사례별 상담을 해줬으면 좋겠다”, “구체적인 공사명을 검색하면 장기수선충당금과 수선유지비 구분이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하 협회장은 “협회 내부에 상담 직원을 확대 개편하고, 장기수선제도 관련 오픈채팅방을 개설해 전문가가 답변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상 중”이라며 “추후 카카오채널을 통해서도 장기수선제도 관련 주요 질문과 답변 등을 회원들에게 알려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kim@hapt.co.kr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